삼척 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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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척 심씨는 고려 시대에 심적충을 시조로 하고, 심동로를 중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심동로는 1342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버리고 삼척으로 물러나 공민왕으로부터 동로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진주군에 봉해졌다. 조선 시대에는 7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으며, 심준, 심언경, 심언광 등이 주요 인물로 꼽힌다. 현감공파, 절제공파, 검교공파, 호장공파 등으로 분파되며,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일원을 본관으로 한다. 삼척 심씨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인구는 2015년 기준 17,03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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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삼척 심씨는 시조 심적충이 고려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을 역임했다고 전해지나, 중간 계보가 실전되어 심동로를 1세조로 한다. 심동로는 고려 말 권신의 횡포에 벼슬을 버리고 삼척으로 낙향, 공민왕이 '동로'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진주군에 봉했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7명을 배출했다.[1] 7세손 심준이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정랑 등을 지냈고, 그의 아들 심언경은 좌찬성, 심언광은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올랐다.
2. 1. 시조 및 중시조
《삼척심씨세보(三陟沈氏世譜)》에 따르면 시조 '''심적충'''(沈迪冲)은 고려 문종조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림랑(文林郞)으로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 심후(沈侯)가 좌승선(左丞宣)을 역임하였지만, 중간 세보가 실전되어 심동로(沈東老)를 1세조로 한다.중시조 '''심동로'''(沈東老)는 1342년(충혜왕 2년) 문과에 급제하여 직한원사(直翰院事), 판예문검열(判藝文檢閱), 판수찬춘추관(判修撰春秋館), 판예문수찬(判藝文修撰), 판밀당직당후관(判密直堂後官), 봉선대부 중서사인 지제고(奉善大夫中書舍人知制誥), 예의판서(禮儀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그가 권신(權臣)들의 전횡을 보다 못해 벼슬을 버리고 삼척부(三陟府)로 물러나자 공민왕이 이를 만류하며 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의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하사하였고, 진주군(眞珠君)으로 봉하였다. 초명은 심한(沈漢)이었다. 그는 해암정(海岩亭)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면서 노년을 보냈다.[1]
2. 2. 조선시대
중시조 '''심동로'''(沈東老)는 1342년(충혜왕 2년) 문과에 급제하여 직한원사(直翰院事), 판예문검열(判藝文檢閱), 판수찬춘추관(判修撰春秋館), 판예문수찬(判藝文修撰), 판밀당직당후관(判密直堂後官), 봉선대부 중서사인 지제고(奉善大夫中書舍人知制誥), 예의판서(禮儀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권신(權臣)들의 전횡을 보다 못해 벼슬을 버리고 삼척부(三陟府)로 물러나자 공민왕이 이를 만류하며 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의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하사하였고, 진주군(眞珠君)으로 봉하였다. 초명은 심한(沈漢)이었다. 해암정(海岩亭)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면서 노년을 보냈다.[1]삼척 심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7명을 배출하였다.[1] 7세손 심준(沈濬, 1453∼1495)이 1489년(성종 20년)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정랑과 예문관 제학 등을 지냈고, 슬하에 언경(彦慶), 언량(彦良), 언광(彦光) 등 세 아들을 두었다. 심언경은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고, 심언광은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이르렀다.
3. 분파
심동로(沈東老)의 아들 심공무(沈公懋)는 서운관 부정을 지냈고, 슬하에 일곱 아들을 두었다.
4. 본관
삼척(三陟)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일원의 지명이다. 진한의 실직국(悉直國)이 102년(신라 파사왕 23) 신라에 합병되어 만약(滿若) 또는 파리(波利)로 불렸다. 505년(지증왕 6)에 실직주(悉直州)라 하였고, 639년(진덕여왕 8) 진주(眞珠)로 고쳤다가 757년(경덕왕 16)에는 삼척군으로 개칭하여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 : 강릉) 관하에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척주(陟州)라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는 삼척현으로 강등되어 동계(東界)에 속하였다가 1377년(우왕 3)에 다시 삼척군으로 승격되었다. 1393년(태조 2) 삼척부로 승격되었고, 1413년(태종 13)에는 삼척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896년 강원도 삼척군이 되었고, 1986년 삼척시로 승격되었다.
5. 주요 인물
- 심준(1453년 ~ 1495년): 7세손. 1489년(성종 20)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좌랑 겸 춘추관 기주관 지제교를 지냈다.
- 심언경(1479년 ~ 1556년): 심준의 아들. 1516년(중종 11년) 별시문과에 급제, 1531년 대사헌, 1534년 이조판서, 1536년 우찬성과 판의금부사를 역임, 1537년 예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렀다.
- 심언광(1487년 ~ 1540년): 심언경의 동생. 1513년(중종 8년) 식년문과에 급제, 1533년 대사헌, 1536년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 심장원(1531년 ~ 1607년): 심언광의 손자. 1568년(선조 1) 진사시에 합격, 이이와 교유하였다.
6. 집성촌
7.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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